어린 친구들이 자살을 하고...
청소년 범죄는 경범죄가 아닌 강력범죄급으로 발전해나가는 작금의 세태에
참 슬픈 생각이 들곤 합니다.
경쟁만을 위한 교육, 뒤떨어지면 바로 인생 낙오자 처우를 받고,
동시에 신기하게도 올바른 가정 교육의 부재...
(2011년 11월 11일에 아이를 낳기 위해 제왕절개하는 어머니들이 그렇게 많았다죠...
밀레니엄 베이비, 20111111 베이비, 공부 잘하는 자식, 반장하는 자식, 대학 좋은 데 간 자식,
좋은데 취직한 자식...등등
대부분의(그냥 대부분이라고 쓸랍니다!) 부모에게 자식이란 자신의 만족을 위한 하나의 사치재일 뿐입니다.
또한 그렇게 사치품으로써의 가치가 떨어진다 싶으면,
가차없이 무시하고, 무시 받게되는 사회 시스템도 정말 큰 문제라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내 만들어내는 악순환의 고리,
그 고리에서 터져나오는 고름들이 이런 충격적이고 슬픈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내지요.
매우 흥미롭고 동시에 슬프게도,
청소년의 문제에는 항상
마녀사냥식의 인터넷 신상털기, 처벌 수위의 강화 요구, 사회적 매장 등
처벌적인 수준에서만 문제를 접근하고 싶어 합니다.
마치 최근의 지하철 자살 사건에 사람들의 반응처럼 말이죠.
(**서울 시내에 아직도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있나?
스크린 도어를 설치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느냐...라는 반응이었죠.
개인적으론 매우 황당하더군요...
죽을 사람이 스크린 도어 유무에 따라 죽고 사는게 결정된다는식의 짧은 생각...
그런 생각이 들게된 경위를 생각하고 예방하며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방법을 찾아야하는데,
물론 기관사나 주변 시민들의 정신적 충격은 충분히 방지되어야만 하지요.
그래도, 그런 충격인만큼, 그만큼 사회가 병들었다는 것도 알아차려야한다 생각하네요.)
왠지 익숙한 문구가 있지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왠지 뉴스에서 많이 본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안그런가요?
저의 요상한 지론이 하나 있는데요.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을 많이 말한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가지지 못했고 그것을 매우 원하는 것이다'
라는 것이죠.
근본적인 대책을 구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이 진정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말뿐인 표현'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영원히 달려야하는 분위기입니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릅니다.
방향에 대한 논의는 없습니다.
같이 달리는 옆사람을 앞지르는 방법만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저도 달리고 있습니다. 지칠틈도 없이 말이지요.
점심 시간에 슬픈 궁상이었습니다.
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