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은 애플에 잊을 수 없는 해로 기억될 것이다. 올해 애플은 정유회사 엑슨모빌을 제치고 세계 최대기업으로 부상했다. 쫓겨났던 잡스가 몰락해 가던 회사로 복귀한 지 14년만의 일이다. 같은 해 잡스는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반엘리트적 기술대중주의
전문가들의 '헛발질'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상황 파악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애플이 제품을 공개하고, 전문가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대중이 열광하고, 이윽고 전문가들도 따라서 열광하는 현상은 이미 수년간 반복되어 온 일이다. <뉴욕타임스>의 기술칼럼니스트 데이빗 포그는 이 양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1) 애플이 신제품을 공개한다.
2) 블로거와 업계 전문가들은 그 제품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분석한다.
3) 판매에 들어가고, 소비자들은 못 사서 환장한다. 모든 회사가 애플을 모방한 제품을 내놓는다.
애플 제품에 대해 소위 '전문가'들과 대중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이런 괴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간극의 원인을 살피는 것은 애플의 철학과 전략을 이해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애플에게 기술은 경외의 대상이 아닌 활용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즉 첨단 기술을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이 애플의 기술철학인 것이다.
완결성에 대한 집착과 폐쇄주의
제품이 단순하려면 그 자체로 완결된 기능과 형태를 지녀야 한다. 복잡하게 연결하거나 확장하지 않고도 고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뭔가 더하고 변형해서 성능이 나아진다면 제품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고, 제품이 완전하다면 더하고 변형하는 것은 제품의 완결성을 떨어뜨리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해커와 고급 사용자들은 기성제품을 이리저리 고치고 바꿔 자신의 물건으로 만들기 일쑤다. 잡스는 이런 짓이 소비자들에게 완전한 사용 환경을 제공하는 데 위협이 된다고 보았다. 해커이자 동업자였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생각이 달랐다. 워즈니악은 애플II에 슬롯 8개를 달아주자고 했다. 사용자들이 원하면 여분의 기판과 주변기기를 연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잡스는 내키지 않았으나, 마지못해 동의했다. 하지만 몇 년 후 매킨토시를 내놓을 때 잡스는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다. 여분의 슬롯이나 포트를 모두 없애는 것은 물론, 특별 제작한 나사를 써서 소비자들이 아예 컴퓨터를 열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 월터 아이작슨, "미국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타임> 특집호 2011년 10월 17일 35쪽.
잡스의 이런 접근은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시장 확대를 어렵게 했고, 급기야 애플을 파멸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달리 다른 컴퓨터 제조업체에 애플의 소프트웨어를 쓰지 못하게 한 탓이다. 애플의 소프트웨어는 애플의 하드웨어를 통해서만 기능과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구글의 '애플화', 애플의 '구글화'
잡스는 파멸 직전의 애플로 돌아와 많은 사람들이 '폐쇄형'이라고 부르는 방식을 강화했고, 그렇게 해서 애플의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최대의 회사로 키워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위기'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더 어울리는 어휘가 되었고, 애플의 모델은 아마존 같은 인터넷 업체는 물론 '개방형'의 상징이 된 구글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구글은 지난 8월 모바일 제조업체 모토롤라를 인수했다. 이를 둘러싸고 '재매각용'이니 '특허권 확보'니 여러 분석이 있었으나, 구글의 의도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사이의 '빈틈'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전처럼 소프트웨어를 자사가 만들고 하드웨어를 타사에 맡기는 방식으로는 최적화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낼 것이고, 같은 안드로이드라도 서비스에 최적화된 단말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제 하드웨어 업체와 소프트웨어 업체, 온라인 서비스와 오프라인서비스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한국 기업의 위기는 이제부터다
한국 언론에 따르면, 아이폰4S에 대한 국내의 반응은 '허탈'과 '안도'라고 한다. 기대했던 소비자는 실망하고 국내 경쟁 업체는 '보잘것없는' 새 아이폰을 보고 안심했다는 뜻일 것이다. 이미 국내 소비자는 아이폰4S의 파괴력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으니 특별히 위로의 말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언론과 업체들에는 해 줄 말이 있다.
결국 이 모든 추측은 '하드웨어'에 대한 것이었다. 정말 아이폰이 그런 외형으로 나왔다면 사람들이 열광했을까? 설사 그랬다 해도, 기록적 매출을 올려 준 아이폰4 구매자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잘 드러나지 않는 변화'가 덜 위험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최근작이 나오기 전까지 아이폰4는 잘 팔리고 있었다.
전화기, 인생을 논하다
한 사용자가 시리에게 '삶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 철학적 질문에 시리는 여러 답변을 준비해 두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패러디해 '여러 증거를 종합해 보면 초콜릿인 것 같다'고 답변하기도 하고, '답변 대신 긴 희곡을 쓰겠다'라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 희곡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무엘 베케트를 읽은 게 틀림없다.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답변은 이러했다.
"남에게 친절해지세요. 지방을 가급적 적게 섭취하고, 가끔씩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과도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도록 노력하세요. 상대가 무엇을 믿든, 어떤 국적을 지니고 있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아이폰4S와 '시리'는 한국 기업을 괴롭히며 여러 교훈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 눈앞의 돈벌이에 눈이 멀어 인문학, 예술, 기초과학을 내던진 어리석음의 결과를 목격하게 해 줄 것이다. 길게 말할 것 없이, 한국은 예술대학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퇴출을 거론하며 이것을 '선진화'라고 부르는 곳이다. 예술대와 경영대가 다른 이유로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리가 한국 사회에 줄 가장 큰 교훈은 부끄러움일 것이다. 이 사회는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공지능도 답하는 이 질문에 말이다.
'무의미한 기계적 답변을 확대해석하지 말라'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답변을 내놓는 기기는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본 사람, 회사, 공동체의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제 경쟁은 더 이상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둘러싼 싸움이 아니다. 삶, 의미, 가치,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미래가 더욱 어두워 보이는 까닭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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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분이 머리에 맴도네요,
무한 경쟁의 시대에
잃어가는 것들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실패의 제로섬게임이 되지 않았으면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42260&CMPT_CD=P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