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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Tenet) 후기 및 남은 궁금증들

간단 후기.

며칠 전 영화 테넷을 감상했습니다.

코로나로 시끌한 현실, 방비를 철저히하고 말이죠.

 

테넷을 다 보고 난 감상은,

'역시 놀란, 꽤 재미있었다' 입니다.

 

SF 영역에서 상상 밖의 상황을 눈 앞에 펼쳐내고

관람객에게 생각하게하는 놀란의 능력은 역시 대단합니다.

저는 평소 어려운 영화를 좋아하기에

테넷을 보며 더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영화 중반부터는

호불호가 갈릴 영화인 것도 눈치챘구요.

 

예고편에서 테넷에 대해 미리 공개된 정보나

수 많은 사람들이 유추하는 자료들을 접하며

테넷은 열역학 2법칙인 엔트로피 증가를 반전시키는 장치가

가장 중요한 인상을 남길 것이란 기대를 했습니다.

 

그 기대는 적중했습니다.

엔트로피의 감소를 시간 흐름의 반전으로 표현하는 창의력.

그리고 씬을 구성하고 한데 엮어 스토리를 풀어가는 놀라움.

앞으로 두 세번은 더 보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많은 장면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

누군가 그랬듯, 인터스텔라와 인셉션 섞은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었네요.

 

훗날 누군가 훌륭하게 해석해내리라 믿습니다만

그래도 며칠동안 나름 머리를 괴롭히는 주제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남겨보겠습니다.

크게 세 개의 질문으로 풀어보겠습니다.

 

 

해석, 혹은 궁금증(***스포 주의***)

 

1. 시간의 흐름과 역행

예고편의 한 장면에서

 발사된 총알이 총으로 돌아오자, 박사는 말하죠

"너는 총을 쏜게 아니야, 총알을 잡은 것이지"

라고 말이죠.

 

영화를 보고나서 가장 크게 느낀 혼란은

시간의 흐름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시간은 한 방향(과거->미래) 흐른다 인식합니다.

그리고 많은 영화 등에서 다루었듯이

보통의 시간여행 개념은 특정한 과거로 돌아가

동일한 방향(과거->미래)으로 흐를거라 생각하죠.

인간 인식적으로도 이게 편합니다.

 

테넷에서는 과감(?)하게 역행하는 시간을

시각/청각적으로 관객에게 던져버립니다.

그와 동시에 혼란이 오더군요.

 

예를들어 어떤 총알이 엔트로피가 감소하는(시간이 역행하는) 상황이라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주인공 시점(시간이 순행하는)에서는

현재(총을 잡다) -> 미래(총알을 발사하다)의 흐름이 자연스러우나,

총알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역행하므로

총알이 타격점에 박혀있다 -> 총알이 발사되었다 -> 총구를 통과하다 -> 탄창에 들어있다.

가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이 시각/청각적으로 리와인드 되는 장면으로

눈 앞에 펼쳐지니 정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2. 필연(운명)은 정해져 있는가?

시간 흐름 문제를 조금씩 파악하면서

다시 혼란이 생기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행위의 필연성 여부입니다.

 

시간을 역행하는 총을 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봅시다.

시간에 순행하는 주체(사람)이 총을 쏘았고,

이후 어떤 일이 생겨 총알의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시점이 된다면,

총알이 벽면에 박힌 채 시간을 역행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시간순행)의 입장

(과거) 총을 잡다 -> 총을 발사하다(미래)

*총알(시간역행)의 입장

(미래)총알이 발사되어 벽에 박혔다 -> 발사되었다 -> 탄창에 총알이 있다(과거)

의 시간 대칭이 이루어집니다.

한쪽(사람)은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고, 다른 한쪽(총알)은 미래에서 과거로 온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혼란스러운 구도가 형성됩니다.

총을 쏠 사람이 총을 발사할 폼도 잡기 전에

저 벽에 박혀있는 총알은 곧 허공을 날아와 사람이 겨누고있는 총구를 통해 탄창에 안착될 것이라 기대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사람은 총을 쏠 것이란 사실이 정해졌기에 얼마 후 총을 쏘는것이 자연스러울까요?

아니면 중간에 어떤 개입을 통해 총을 쏜다는 미래를 바꾸고 총알이 벽에 박혀있는 상황을 바꿀수도 있을까요?

 

영화에선

'역설은 역설이다'라며

자세한 내용은 연출되지 않지요.

감독이 주는 관객에의 선물(숙제)이 아닐까 싶습니다.

 

3. 시간과 공간의 방향성

자 이제 시간을 역행하는 주체가 인간인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A는 시간을 순행하며 어느 방향을 향해 0m지점에서 100m까지 표시된 길을 따라 걷고 있다.

*B는 시간을 역행하며 100m의 지점에서 0m를 향해 걷고 있다. 

 

A가 B를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요?

B는 0m지점에서 머리 방향은 0m를 향한 채 100m를 향해

뒤로 걷는 모습입니다.

동시*에 B가 A를 바라본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A는 100m지점에서 머리 방향은 100m지점을 향하고 0m를 향해

뒤로 걷는 모습입니다.

 

두 대상중 한 대상이 인버전을 한 상황이라면

서로 바라보는 모습은 물리적으로 똑같아 보입니다.

 

이 부분은 테넷의 비행기씬에서

너무 멋지게 표현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감독은 '엔트로피 방향의 우세'로 설명하지요.

참 멋진 설정인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이해해 봤습니다.

 

두 인물이 투닥거리는 씬에서

순행vs역행 상태인 두 대상이

서로의 의지를 물리적으로 발현하는 단계에서는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지 고민해보고 있습니다.

 

서사가 취약하다든지, 인물의 도구화 등 비판받을 요소는 적지만

간만에 즐거운 상상(숙제)중이고

이 정도의 설정을 과감하게 표현해내는 점에서는

천재는 천재입니다.

끝.